트위터에서 본 모 웹툰 작가의 트윗 하나가 잊혀지지 않는다. 대기업에 다니는 그의 친구가 여자친구와 헤어진 것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말로 시작한 그 트윗은, 그 친구에게 정말 힘든 게 어떤 것인지 가르쳐 주고 싶다는 말로 끝났다.

나에겐 그 트윗이 대기업 다는 사람은 힘들어 할 자격조차 없다는 의미처럼 보였다.

…친구가 맞기는 한 걸까?

밟았다, 똥 출장

오랜만에 구미에 출장 중. 코너에 몰린 문제가 있어서 왔다. 진득하게 분석하고 해결할 시간도 없고, 동일한 스펙의 다른 프로젝트는 안 걸리고 넘어 간 문제. 풀어서 얘기하자면, 아주 똥 밟은 케이스라는 것이다.

왜 어쩌다가 우리 프로젝트만 물고 늘어 지는 꼴이 된 건지…. 심란하다.
아 짜증나…

1.
갑자기 매스컴에 이슈가 된 김에 노다메 칸타빌레 만화책을 정주행했다.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한 젊은 예술인들의 행복하고 귀여운 이야기이지만, 몇 년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현실의 벽이 이번엔 선명하게 눈 앞에 존재했다. 행복하고 귀여운 그들은 모두 경제적인 뒷받침을 등에 업은 인물들이었다. 반면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는 예술인들은 그들이 간절하게 하고 싶었던 예술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며 불행의 그림자가 서려있었다.

2.
예술, 문학은 언제부턴가 먹고 살 수 있는 수단에서 상당히 멀어졌다. 스타가 된 몇몇을 제외하곤. 이런 기사도 본적이 있었다 - 신춘문예 출신 작가들 중에 글로 연 200만원 이상의 소득을 버는 작가들은 6%에 불과하다고 했다. 연 200만원이다. 월 200만원이 아니고. 결국, 어쩌다 운 좋은 경우를 제외하면 예술, 문학은 생계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소비활동이 된다는 것이다.

3.
나는 소설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이 꿈이었고, 지금도 유효한 꿈이다. 그런 내가 이과를 선택하고 공대를 진학한 뒤 하드웨어 개발자로 일하게 된 이유는 단 한 가지. 먹고 살기 위해서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인물들 처럼 내가 하고 싶은 뜻을 이루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아도 될 만한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게 원망스럽다거나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다. 오히려 나 같은 사람이 절대 다수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4.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머니를 존경한다. 개인적으로 존경이라는 표현을 많이 아끼는 편이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비판력을 상실하게 하는 맹목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머니를 존경한다. 어머니는 그렇게 가혹하고 견디기 힘드셨을 현실의 벽을 마주한 위기 속에서도 국내에서 높이 평가 받는 작가 중 한 분으로 자리를 잡으셨다. 그것도 맑고 투명해야 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작가로서 말이다. 내가 아무리 글을 좋아해도 어머니 만큼 단단하고 고결하게 다듬을 수는 없을 것 같다.

5.
노다메 칸타빌레는 비록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했어도, 그것은 어쨌든 보통 사람들에겐 환상의 하나일 뿐이다. 나는 여전히 그런 환상을 유리벽 너머로 지켜 보고 있고, 책장에 가득한 수 많은 어머니의 책들을 보며, 오늘도 칸타빌레 따위 없는 하드웨어 개발자로서 살아 간다. 수 많은 야근과 함께.